'정치요금'이 된 전기요금…독점 깨고 경쟁을 許하라 [김경식의 E3 이야기]

입력 2022-02-15 17:37   수정 2022-02-16 08:38


부자와 가난한 자가 마시는 물과 숨 쉬는 공기는 다를 수 있지만 사용하는 전기는 똑같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전기는 인권이다!”라고도 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 중요한 필수 재화인 전기의 가격(요금)은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연유로 전기요금을 ‘정치요금’이라고 하고 ‘전기세(稅)’라고도 인식하게 됐는가?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아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이를 위한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전기라는 상품의 특성과 시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기는 무형재로서 가격 이외에는 차별화 요소가 없다. 대체재가 없고 (현재까지는) 재고로 보관할 수도 없으므로 일정량은 소비가 없어도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가격이 높아도 일정량은 구매해야 하고 가격이 낮다고 해서 더 많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관계로 수요와 원가가 시시각각 변한다. 시장의 특성은 수출입이 안 돼 국외의 경쟁자가 존재할 수 없고, 기저발전(원자력·유연탄 등 24시간 발전)의 신규 진입도 장애가 많다.

이런 특성을 가졌기에 전기요금은 기본적으로 계시별(계절별·시간별) 공급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상품의 차별화 요인이 없다 보니 원가주의로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원가에는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들어간 모든 비용에다 법인세, 배당금, 적정이윤이 포함돼 있다. 이를 총괄원가주의라고 하는데 원가회수율이 100%라고 하면 여기에는 5% 내외의 세후 이익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이는 전기의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적정투자보수율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다. 또한, 전기는 모든 이에게 필수재이므로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고 특례요금은 배제해야 한다. 이런 원가주의, 공정 보수주의, 공평주의를 전기요금 결정 3원칙이라고 한다.

이 같은 3원칙을 기준으로 전기요금 결정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산정 기준에 따라 총괄원가를 산정하고, 요금 조정이 필요한 경우 전기요금 개정안을 이사회 의결 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제출해 인가를 신청한다. 산업부 장관은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친 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기요금 조정 방안을 협의하게 된다. 이 협의 후 산업부 장관은 전기요금 개정안을 전기위원회 심의에 부치고 여기서 최종 결정하게 되는데, 전기위원회는 위원장(차관급)을 포함해 각계 대표 9인으로 구성돼 있다.
전력시장 가장 큰 문제 ‘패러다임 시프트’
이 같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전기요금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그 결과 어떤 부작용이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줘야 하는가.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전력시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다. 2050 탄소중립의 핵심은 현재 37%(269.6백만CO2eq)인 발전 부분의 화석에너지원을 없애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분산에너지원 확대다. 2050년이 되면 전기 수요는 지금의 두 배(1215TWh)로 늘어나게 되는데 송전탑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 수요지와 공급지를 최대한 가깝게 해야 하고 에너지 효율성도 지금 수준보다 대폭 향상시켜야 한다. 앞으로 전력산업과 전기요금은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세 가지 정책 목표(탄소중립·분산전원·에너지 효율성 향상)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책정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우선 전기요금의 탈(脫)정치 요금화가 필요하다. 전기는 물과 공기 다음으로 모두에게 필요한데 ‘가격’ 이외에는 상품의 차별화 요인이 없다 보니 수많은 민원 압력을 받고 있다. 특례요금으로 인한 손실이 연 4조원이나 된다. 왜 그런가? 공기업 한전의 ‘판매 독점’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선진국과는 반대로 에너지산업을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지 않아도 된다면, 탄소중립을 강압적으로 해도 된다면, 그래서 우리 경제가 낙후돼도 좋다면 지금과 같이 원가에 따라 배분하는 시스템으로 가도 된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길이 아니다.

정부도 이 같은 필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 6월 소매경쟁 법안 발의를 했으나 2017년 9월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이훈 의원 등 일부 의원의 반대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당시 회의에서 이인호 산업부 차관은 “전체적으로 분산형 전원이 확대되고 신재생에너지로 가가호호 이렇게 생기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부에서 이것으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이 아니고 그냥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히 올 것”이라며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같은 날 이훈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한전의 전력판매시장 독점을 법률로 명문화하는 내용’을 주장했다.(제354회 국회 제2차 법률안 소위 회의록, 2017.9.21) 경쟁체제 도입 반대, 즉 한전의 판매독점 옹호를 위한 조직적인 저항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민영화해도 전기요금 오르지 않아
정부는 당시 발의한 법안을 좀 더 체계화해 빨리 재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다수의 판매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다양한 옵션의 상품을 개발하게 되고, 전기는 더 이상 원가에 기준한 배분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의한 상품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기요금에 정치가 개입할 수 없게 된다. 한국통신을 민영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1994년)한 뒤 이동통신은 세계적인 먹거리 산업이 됐다. 이제 휴대폰은 통화 수단을 넘어 인생의 반려 기기가 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전력 소매경쟁 도입으로 생길 수 있는 취약계층이나 특례가 필요한 부분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거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유인하면 된다. 가격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사례(1997~2014년)를 보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전기요금이 소매경쟁 지역은 주택용 -5.2%, 일반용 -14.5%, 산업용 -5.3% 등 전체적으로 -4.5%로 나타났다. 반면에 독점 지역의 경우 주택용 3.9%, 일반용 3.2%, 산업용 9.9% 등 전체적으로 8.4% 인상됐다.(한양대 김영산 교수, KERI 정책제언 17-4)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나라에서 소매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는 독립된 전기요금 규제기관을 두고 소비자에게 소매경쟁 요금이나 기존 요금체계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매경쟁이 도입되지 않으면 앞으로 한전의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게 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달성한다고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RPS) 비율을 높일수록 한전의 적자는 쌓인다.(2020년 약 3조원. 현 전기요금의 기후환경요금) 전력 피크수요 분산을 위해 전력 저장용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지원할수록 한전의 매출은 줄어든다. 재생에너지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전력 주파수 안정용 ESS를 설치할수록 한전의 적자는 쌓인다. 전력 수요의 유연성을 높이는 분산형 전원 확대를 위한 여러 시도, 열 부문 전환(P2H·power to heat), 수소 부문 결합(P2G·power to gas), 수송 부문 결합(V2G·vehicle to grid), 플러스 DR(demand response)은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스마트 그리드는 인프라 부족으로 수천억원을 들여서 시범사업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매경쟁이 도입되면 시장에서 이러한 투자가 경쟁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음에도 전력 저장용 ESS는 아직 화재 원인도 못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 또한 시장이 없는 관계로 기술 개발이 안 되고 있다. 전기 저장 ESS 없이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분산전원 확대도, 수소연료전지 사업도 불가능하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도 불가능하다. 많은 제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길 것이다.
탈정치 요금화 위해선 독립적 규제기관 필요
전기요금의 탈정치 요금화를 위해서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전기요금 책정을 위한 독립적 규제기관이다. 현재 산업부 장관 중심의 전기위원회는 ‘협의체 행정기관’으로 사전 심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운영 경비는 주무 부처에서 조달하고, 상임위원은 소관 부처 공무원이 겸직하고 있다. 즉 예산과 인사의 독립이 안 돼 있다. 또한 전기요금 결정도 위에서 소개한 프로세스와는 달리 여당 및 국회와 협의를 통해 결정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결정 3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과도한 정치적 개입으로 인해 전기요금의 일관성, 예측가능성, 투명성이 무너지고 있다.

따라서 독립된 규제기구를 설립해 임기, 예산, 의사결정의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전기위원회를 현재 산업부 소속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하고, 역할도 심의 기능에서 심의·의결 기능으로 바꾸고, 위원의 요건도 좀 더 상향시키는 등 신분 보장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홍의락 의원 입법 발의) 그러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산업부 장관이 그 결정에 구속받게 되는 문제가 있다”며 정유섭 의원 등 대부분 국회의원이 반대하자 산업부는 “그런 측면도 있고요” 하면서 물러섰다.(제354회 국회 제2차 법률안 소위 회의록, 2017.9.21) 규제기관의 독립성이 높아질수록 전기요금 민원 반영이 어렵게 될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반대에 권한 약화를 우려한 산업부의 미온적 대응의 결과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이 독립된 규제기관을 두는 것은 그만큼 합리적인 전기요금의 결정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립된 규제기관은 전력시장 소매경쟁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다.
현행 총괄원가주의도 수정돼야
전력 판매 부문의 소매경쟁이 도입되더라도 발전·송전 부문의 총괄원가주의는 수정돼야 한다. 현행 총괄원가주의하에서는 한전의 효율적 비용 지출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이 없다. 원료인 콩값보다 제품인 두부 가격이 더 싸니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호소만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장(두부) 가격 제약이 있음에도 싸고 질 좋은 콩을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에 기반한 전기요금 결정을 인센티브 시스템이 도입되도록 변경해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싸고 질 좋은 콩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로 뛰어다니게 하고 그 성과는 인센티브로 보상해 줘야 한다.

전기는 이제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서 국민 삶에 불편함이 없고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면 되는 재화가 아니다. 이것은 기본이다. 탄소중립도 달성해야 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분산전원도 이뤄내야 한다. 전기화의 확대에 따른 에너지 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경쟁적 요금체계에 달려 있다.

■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은

현대제철 기획실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다.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소신을 갖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서강대에서 화학공학,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고(故)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실에서 경영전략을 배웠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당진제철소를 건설할 때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오너 경영인을 보좌하면서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경영철학을 배우게 됐다. 이런 배움과 회사 업무를 통해 접한 에너지·환경·안전·노사·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을 갖고 기업과 생태의 공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위원(2013년),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2020년)을 지냈으며 한국ESG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푸른연금술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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